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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연대’ 출범 알리는 인천 장애인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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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 댓글 0건 조회 206회 작성일 23-04-1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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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연대 인천지부, 창립대회 이후 첫 출범
유명자, 박성호, 이봄 씨 ‘탈시설 당사자’ 증언
“인천시 탈시설 계획에 당사자 의견 반영하라”


18일 오후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인천지부 출범식에서 연윤실 전국탈시설장애인
연대 간사가 인천시청을 등지고 참가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유명자의 26년. 박성호의 30년. 이봄의 23년. 80년 가까운 세월의 이야기가 시설을 맴돌다 광장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휠체어 스무 대가 비 온 뒤 삐쭉빼쭉 솟은 잔디밭 앞에 도열했다. “열심히 살자!” “행복하게 살자!” “빛을 보며 살자!” 장애인들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앰프 볼륨이 점점 커졌고, 날아가는 새가 그려진 깃대가 하늘에 꽂혔다. 한 장애인이 외쳤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시설이 아니라 바로 이곳, 지역사회입니다.”

18일 오후 인천시청 앞,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탈시설연대) 인천지부가 공식 출범했다. 나흘 전인 14일 탈시설연대가 서울시청 동편에서 창립대회를 가진 뒤 전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지부다.

비마이너는 이날 ‘시설 생존자’들의 말을 통해 인천시 탈시설 5개 년 계획의 문제점과 탈시설연대 측 요구사항을 짚어보았다. 탈시설장애인 유명자 씨(49), 박성호 씨(48), 이봄 씨(34)가 한목소리로 시설에서의 삶을 증언했다.


18일 오후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인천지부 출범식에서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준호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이봄 전국탈시설연대 
인천지부 대표, 유명자 시설에서나온사람들의모임 회원, 박동섭 인권실천단 불나비 활동가. 
사진 복건우

- 탈시설 장애인들 입 모아 말한 ‘지역사회 자립생활’

“시설 생활은 죽음보다 두려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지만, 그중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명자)

유명자 씨의 20대 기억은 가평 꽃동네에서 출발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틀에 박힌 일상을 보냈다. 일회용 기저귀가 아닌 천 기저귀를 차고 있던 탓에 옷이 흠뻑 젖을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꽃동네를 찾아온 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이 유 씨의 탈시설을 도왔다. 즉시 보따리를 싸서 시설을 박차고 나온 유 씨는 원장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죽어도 안 돌아올 거예요!” 지금도 그 말을 지키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유 씨가 말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감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살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갈 때가 훨씬 행복합니다.”

“군대 같은 시설이었습니다. 하나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밤 10시만 되면 자야 했어요.” (박성호)

열여덟 살 때였다. 박성호 씨는 인천에 있는 한 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가 30년을 갇혀 살았다. 늘 방문이 열린 채로 24시간 감시를 당했다. 마음 편히 티브이를 볼 수도,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탈시설한 이후 박 씨는 자고 싶을 때 자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며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박 씨는 현재 유 씨와 함께 ‘시설에서나온사람들의모임(시나모)’에서 활동하며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탈시설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모두 지역사회에 나올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겁니다.”

“인천에 있는 ‘명심원’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한 공동생활가정으로 옮겨갔어요.” (이봄)

다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 열두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총 23년을 시설에서 보낸 이봄 씨는 2018년 1월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먼저 탈시설한 동료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동료가 탈시설하는 걸 보고 나도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나가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시설에서는 안 된다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너는 너라고 이야기했어요.” 그 말을 듣고 전에 없던 반항심이 생겼다. 무기력하게 있지 않고 시설장을 밀어붙였다. 그룹홈이 탈시설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탓에 이 씨는 지자체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시설을 나왔다. 탈시설 5년째에 접어든 그는 “시설에 있는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인천 지역 장애계 활동가들이 ‘인천의 탈시설 당사자들이 뭉친다! 전국탈시설
장애인연대 인천지부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영유아시설·그룹홈 빠진 ‘인천시 탈시설 로드맵’

인천시는 2018년 ‘탈시설 및 지역사회 통합지원 5개 년 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장애인거주시설 18개소 797명을 대상으로 5년간 48명의 탈시설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인원 자체도 터무니없이 적지만, 모든 형태의 시설을 아우르지 못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현재 영유아시설과 단기·공동생활가정(그룹홈)은 탈시설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해당 시설을 포함하면 인천시에는 총 72곳의 시설에서 975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2021년 12월 기준). 이에 대해 양준호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인천시가 목표로 한 48명 가운데 실제로 탈시설한 인원은 지난해 기준 절반도 채 안 되는 20명대 초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장종인 인천작은자야학 사무국장은 “앞서 2009년 인천시가 실시한 자립욕구조사에 따르면 ‘탈시설하고 싶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300명에 달한다. 인천 지역 장애인 900명 중 300명이 탈시설을 원한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분들의 마음이 인천시에 의해 하나같이 묵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시의 탈시설 계획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에 해당한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협약을 보완하기 위해 2017년과 2022년 각각 발표한 일반논평 5호와 탈시설가이드라인을 보면, 수백 명이 거주하는 대규모 시설이든 열 명 안팎이 머무는 소규모 시설이든 모두 ‘자립적 주거 형태’로 볼 수 없다. 또 탈시설 전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모든 종류의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탈시설연대 인천지부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2차 5개 년 계획(2024~2028)에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장종인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지역사회의 빛을 보고 살아갈 것인가, 시설 안에서 이름 없는 사람으로 눈을 감고 말 것인가의 문제”라며 “900여 명 전원의 탈시설을 위해 인천시는 거주시설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탈시설연대는 이날 출범식을 마치고 난 뒤 ‘420장애인차별철폐 인천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연대 발언과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은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을 주제로 총 28개의 정책과 예산 요구안을 발표하고 인천시에 이를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18일 오후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인천지부 출범식에 참가한 장애인들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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