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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자리, 정신장애인 불법 강제 이송의 문제 / 유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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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 댓글 0건 조회 310회 작성일 23-02-1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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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 특집 ②

지난해 9월 15일,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던 30대 남성 ㄱ 씨가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를 정신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ㄱ 씨 어머니의 요청으로 두 명의 사설 구급대원이 집으로 출동한 직후의 일이었다. 정신장애 당사자였던 ㄱ 씨는 병원으로의 이송을 거부했고, 사설 구급대원들과의 실랑이 끝에 몸싸움까지 발생했다. 사설 구급대원들로부터 가슴을 눌려 강압적으로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ㄱ 씨는 심정지가 발생했고, 이후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지난해 9월 20일, 경기도 용인시 동부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였다. 정신과적 위기 상황에서 공적 이송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가족의 신고를 통한 사설 구급대의 불법적·폭력적 이송이 공공연하게 지속되어 왔으며1), ㄱ 씨의 죽음은 이러한 국가의 방임 속에서 이루어진 ‘예견된 참사’였다는 것이다.

2022년 9월 20일 용인동부경찰서 앞에서 열린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이송 중 사망사건’ 기자회견. 사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22년 9월 20일 용인동부경찰서 앞에서 열린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이송 중 사망사건’ 기자회견. 사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정신과적 위기에 대한 국가의 방임

이처럼 한국에서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대한 ‘치료’는 당사자에 대한 ‘폭력적 이송’으로 시작한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밀어닥친 사설 구급대원들에게 의사에 반하여 끌려 나가는 경험은 당사자의 삶에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민감해진 정신과적 위기 상황,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신체를 제압당하여 자율성이 박탈되는 트라우마적 경험은 그 자체로 정신적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

한편, 정신장애 당사자의 가족도 정신과적 위기 대응 시스템의 부재 속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정신과적 위기 대응의 선택지가 ‘입원’ 혹은 ‘방치’만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당사자의 위기가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것을 집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도 타들어 간다. 

당사자는 입원을 원치 않고, 가족은 당사자의 정신과적 위기가 감당 안 되는 상황. 어떻게든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119나 경찰에 신고해도, 119구급대원과 경찰이 들고 있는 선택지 또한 ‘입원’이라는 단일한 방법뿐이다. 당사자의 자‧타해 위험이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입원’이라는 치료 세팅 내에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하기에, 119구급대원과 경찰은 “(상황이 더 악화되어) 자‧타해 위험이 명확해지면 다시 신고하라”는 모순적인 말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자‧타해 위험 있음/없음’, ‘입원/입원하지 않음’ 사이의 무수한 정신과적 위기들은 오롯이 당사자와 가족의 부담으로 남겨진다. 그 결과, 국가의 부재 속에서 자라난 사설 구급대에 의한 불법적·폭력적 이송은 수많은 당사자에게 잊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기고, 가족과 당사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2019년 7월~2020년 6월 비자의 입원 시의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병원 이송 방식 현황(국가인권위원회, 2021년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 174쪽 재인용, 강조 필자)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늘날 정신장애 당사자의 비자의 입원을 위한 이송의 96%는 가족(73.8%) 혹은 사설 구급대(22.2%)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 7월~2020년 6월 비자의 입원 시의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병원 이송 방식 현황(국가인권위원회, 2021년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 174쪽 재인용, 강조 필자)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늘날 정신장애 당사자의 비자의 입원을 위한 이송의 96%는 가족(73.8%) 혹은 사설 구급대(22.2%)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정신과적 위기에 처한 당사자의 이송 과정에서 ‘방임된 폭력’의 문제에 대해 그동안 개선의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제20대 국회에서는 정신응급 상황에서 경찰관-119구급대원-정신건강전문요원의 협동체계를 구축하려는 입법적 움직임이 있었다(김상희 의원 대표발의,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의안번호 22896). 그러나 국회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되었고, 이후로도 특별한 대안 입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송과 관련한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하자, 결국 경찰·지자체 차원에서 공공이송체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시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서울경찰청과 협동으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를 출범하여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경찰관, 119구급대원 및 정신건강전문요원이 합동 대응하는 현장지원팀을 24시간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2), 경찰에서는 지난 2021년부터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을 비롯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응급입원 ‘현장지원팀’을 시범적으로 운영하여 왔다3). 그러나 이러한 시범적 제도의 운영에는 인력 충원과 역량 확보 등의 여러 과제가 산적해 있으며4), 공공 이송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데에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특별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 운영체계도(서울특별시의회 제11대 보건복지위원회 제314회[임시회]시민건강국 현안업무 보고 자료, 2022년 9월 23일, 65면의 도식을 필자가 수정)
서울특별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 운영체계도(서울특별시의회 제11대 보건복지위원회 제314회[임시회]시민건강국 현안업무 보고 자료, 2022년 9월 23일, 65면의 도식을 필자가 수정)

- ‘인권적 이송’을 넘어서

그러나 설사 현재의 정신과적 응급상황의 이송체계가 개선되어 보다 ‘인권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째, 정신과적 위기 대응 방식이 ‘비자의 입원’만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인권적 이송 또한 비자의 입원의 준비단계에 불과하다. 이송을 안전하게,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이송 이후에 비자의 입원만이 가능하다면 ‘인권적 이송’은 결국 당사자에 대한 강제와 갈등 발생의 시점을 잠시 뒤로 미룰 뿐이다.

또한, 경찰과 119 대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협업하여 아무리 ‘체계적으로’ 이송을 진행한다고 하여도, 여기에는 여전히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성이 전제되어 있다.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병원으로 ‘끌려가는’ 경험은 중대한 기본권 제한임은 물론이고, 당사자에게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겨 치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결코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보다 나은 이송을 넘어선) ‘강압 없는 대안적 위기 대응 시스템’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러한 강압 없는 위기 대응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힘든 공상일 뿐이라 말한다. 정신과적 위기 상황에서 정신장애 당사자는 병식(insight)이 없고 자‧타해 위험이 높기에, 강압적 이송과 강제 입원, 신체의 제한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것이다. 

‘강압 없는’ 정신과적 위기 대응은 정말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공상 속 희망 사항일 뿐일까? 이어지는 3편에서는 또 하나의 강압적 조치인 격리·강박의 사례를 살펴보고, 이후의 기사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비강압적 위기 대응의 여러 대안적 시도를 다루고자 한다. 공상이라 불렸던 것들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각국의 현장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해온 수많은 강제 조치가 사실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

*                    *                    *

1) 법률상 보호의무자의 요청만으로 사설 구급대가 정신장애 당사자를 강압적으로 이송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이며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서울고등법원 2018 노2985 판결(2019년 4월 18일 선고)에서는 “보호의무자 2인의 신청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이라는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의 입원 결정은 필수적”이고 “그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 정신질환자의 의사에 반한 입원이나 이송은 허용될 수 없다”며 정신장애 당사자를 강제 이송한 사설 구급대원들에게 형사처벌을 내렸다.

2) 서울특별시의회 제11대 보건복지위원회 제314회[임시회] 시민건강국 현안업무 보고 (2022년 9월 23일) 64~65면. 

3) 경찰 ‘현장지원팀’ 운영은 병원 및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의 유관기관과의 상호 협력이 증가하고 응급입원에 걸리는 시간이 유의미하게 단축되는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는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장시간 이송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등 (경찰이) 과도한 부담을 떠안고 있는” 행정편의적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정신장애 당사자의 인권보장과는 거리가 있다. (2022년 10월 20일 경찰청 보도자료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현장지원팀’ 전국 확대”)

4) 지난해 9월 기준, 서울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 구성을 위해 충원이 계획되었던 20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 중 단 3명만이 모집된 상황으로, 사업 운영에 많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2022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의회 제11대 보건복지위원회 제314회[임시회] 제1차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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