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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장애를 극복하고 가야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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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 댓글 0건 조회 206회 작성일 23-02-1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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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장애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회성 장애



대학 신입생 시절을 보내며 첫 방학을 기다리고 있었을 즈음, 같은 과 동기의 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녀석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겠으나 아버지를 잃은 동기의 얼굴을 보고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같은 과 사람들과 함께 약간의 돈을 모아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내 인생의 첫 조문이었다. 가족과 함께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병문안을 위해 입원실을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입원실이나 중환자실과는 확연히 달랐다. 굳은 표정으로 드나드는 사람들 뭔가 가라앉은 분위기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울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 들어가 상주이자 과 동기인 친구에게 같이 맞절로 인사를 해야 했으나 다리가 좋지 않았던 탓에 그 과정은 생략되었고, 조문객들이 식사하는 장소 역시 바닥에 탁자만 놓여 있어 앉아있을 만한 다리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간단히 인사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었다.

두번째 조문은 그로부터 몇 달 후 출석 중이던 교회의 어르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첫 조문은 여러명의 과 동기들과 함께 갔었기에 큰 부담감은 없었지만 이때는 여자친구와 단둘이 가는 탓에 실수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거의 막내급 나이였고, 고인과 상주 모두 나와 교회 분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아 당시 최신가요 음악으로 벨소리를 설정한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꾸지 않아 민망한 상황이 생겼지만 어쩔 줄 모르는 나와 여자친구에게 "아직 어린 나이니 그런 실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이해해 주신 덕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두 번째 조문도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문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고 난 후 “장례식장은 장애를 극복하고 나서 방문해도 늦지 않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해서 비장애인처럼 잘 다니게 되면 그때는 가기 싫어도 자주 다닐 수밖에 없는데 장애 극복이 우선이지 않느냐”는 반응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결혼식이나 조문 등의 경조사 때 될 수 있으면 직접 방문은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장애 극복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라는 충고도 있었다.

신체적 장애는 사회 규범과 예절을 배우는 데에 전혀 문제 될 것 없어

장례식장 방문 때 내 입장에서는 얼굴이 화끈거릴 만한 실수가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검은색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평소와 같이 흰 양말을 신었던 것이다. 그때의 당황스러웠던 마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나이,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것저것 배워나가는 때이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로 이해가 될 수 있었지만, 만약 30대 초반의 나이에 첫 조문에서 사회 초년생들이 하는 그러한 실수를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아마도 “저 사람 나이 먹어서 왜 저래?”라는 말에 누군가는 “아 저 사람 장애인이라 그래”라는 말로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었을 수 있다. 장애 극복을 이유로 적절한 때에 사회적 규범을 배우지 못한 것이 장애인이라서 그렇다는 오명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어리둥절했던 첫 조문, 그리고 떨리고 불안하기만 했던 두 번째 조문을 마친 지 20년이 훌쩍 넘었고, 가족과 분리된 지금은 더 많은 경조사에 직접 가거나 봉투를 보내고 있다. 그 두 번의 조문에 누군가가 장애 극복이나 신체적 불편함을 이유로 장례식장 방문을 막지 않았던 것이 지금도 고맙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1세대 장애 극복이라면, 장애로 인한 물리적 혹은 사이버 접근 불가와 이로 인한 신체적 사회적 고립을 이겨내는 것이 현대 사회의 장애 극복이 아닐까 한다. 만약 장애 극복을 이유로 혼인이나 장례 등 각종 모임에 가는 것을 제한하여 그곳에서의 예절이나 주의사항 등을 알게 될 기회를 놓치거나 외부 교유가 줄어든다면 사회성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몸은 불편하지만 장례식, 결혼식, 돌잔치 등 누구나 꼭 한번쯤은 가는 그런 장소에서 “저 사람 장애가 있지만 참 매너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장애인에게든 공평하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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