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마당

경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유게시판

  1. HOME
  2. 소통마당
  3. 자유게시판


컬러풀 캐나다, 장애인 이동권의 수호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하늘 댓글 0건 조회 249회 작성일 23-02-17 21:23

본문

휠체어를 굴러가게 하는 권력

밴쿠버의 시내 버스 . ©황서영
밴쿠버의 시내 버스 . ©황서영

눈보라가 몰아치고 체감 온도가 기어이 마이너스 20도까지 찍던 그날은 파트타임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 좋게도 버스 안 빈자리를 발견하고 추위에 꽁꽁 언 몸을 좌석 구석에 구겨 넣었다. 노곤해진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 내 옆자리에 앉는 기척에 눈을 떴다.

“안녕하세요. 오늘 많이 춥죠?”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빨간색 손수건을 머리에 두른 여성이 푸근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 어머니 나이쯤 되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엄청 춥네요.”

날씨 인사로 말문을 튼 아주머니는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학교를 다니며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추운 날 밖에서 일을 하다니 힘들겠어요. 우리 아들은 얼마 전에 버스 기사가 되었답니다. 호호호”

빨간 두건 아주머니는 자랑할 게 있어 대화 상대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체 없이 본론으로 돌입했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히 ‘버스 기사'가 맞았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속담을 가지고도 귀천을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내가 기억하는 버스 기사라는 직업은 버스 옆자리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랑할 만큼 대단한 직업은 아니었다. 아니, 진실 여부를 떠나서 그런 편견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빨간 두건 아주머니의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과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어우러지지 않아 순간적으로 내가 잠이 덜 깬 건가 싶었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때 그 아주머니의 자랑스러운 표정은 충분히 그럴만했다. 캐나다의 버스 운전자들은 100% 공무원이며 상당한 수준의 보수와 복지로 선호도가 높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중교통 운전기사들에 대한 대우는 결국 시민들이 매일 당면하는 생활 속 서비스의 질로 직결된다.

지금껏 캐나다의 버스를 이용하면서 승객이 자리를 잡기 전에 버스를 출발시키거나 ‘도쿄 드리프트’를 방불케 하는 난폭 운전을 하거나 혹은 질문을 했을 때 불친절한 태도로 응대하는 버스 기사를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아예 없진 않았지만 8년의 기간 동안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다.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기계에 가져다 대면 기사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탑승객들은 버스 뒷문으로 하차할 때 운전석을 향해 큰 소리로 ‘땡큐'를 외친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바퀴가 달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탑승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바퀴가 달린 것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다. 버스정류장에 휠체어나 유모차에 타고 있는 사람(유모차와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버스 기사의 막중한 임무가 시작된다.

버스를 정차시키고 운전석 어딘가의 버튼을 누르면 ‘삐-삐'하는 신호음과 함께 저상 버스의 차체가 더욱 낮아진다. 그리고 버스 바닥에 붙어 있던 패널이 펼쳐지면서 지면과 버스를 연결해 주는 경사판으로 변한다. 시끄러운 신호음이 멈추면 대기하고 있던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들이 가장 먼저 탑승을 한다.

혹시 버스 안에 마련된 휠체어 전용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들이 있었다고 해도 신호음이 시작되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접어 올리며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가끔 기사들이 운전석에서 나와 안전장치를 체결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들 스스로 조작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편리하게 디자인된 듯 보였다.

자리를 잡고 안전장치를 체결한 후 버스 기사에게 다 됐다는 언질을 주면 버스기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승객들에게 탑승해도 된다는 눈짓(혹은 손짓)을 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아무리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과정이라 한들 적어도 5분 이상은 지체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그 누구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기다리며 버스 기사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린다. 대중교통 종사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존중과 존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캐나다의 장애인들은 자유롭다. 자유로울 뿐 아니라 당당하다. 그들의 당당한 자유는 ‘장애인 복지’라는 하나의 바퀴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시설에 휠체어 접근성을 의무화하는 제도 덕분에 장애인들의 외출은 자유로워지고, 길에서 그들을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산소처럼 당연히 여길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 종사자들에게 제공되는 훌륭한 보상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부심과 직업정신으로 연결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보다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각각의 바퀴가 되어 장애인들의 이동권, 활동권, 참여권에 기여하며 그들의 자유가 당당하게 유지되고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든다.

시민들의 일상 한가운데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대중교통 종사자들에 대한 보상과 자부심 고취가 장애인들의 인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대중 안에 항상 장애인이 존재하며 그들은 대중과 따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종사자의 대중 통제권은 사회복지 제도와 더불어 또 하나의 견고한 바퀴로서 사회를 건강하게 구르게 하는 막중한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쉽게 무시되던 버스 운전기사들에 대한 인식이 이곳에서는 반대인 이유이자 동시에 결과이다. 바퀴 하나로 굴러가는 버스가 없는 것처럼 장애인의 인권도 단 하나의 바퀴로 유지되지 않는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카카오톡실시간동료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