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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 이야기 '달을 위한 별의 연주', 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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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 댓글 0건 조회 223회 작성일 23-02-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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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위한 별의 연주-1

첼리스트 박관찬. ©천막사진관 오상민4년 동안 거주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할 집을 고르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투룸’이었다. 짐이 많으니까 가능한 넓은 공간에 수납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방 하나는 ‘첼로 연습실’로 꾸미고 싶은 욕구가 더 큰 목적이었다.그래서 이전에 살던 집과 가능한 비슷한 구조(방 하나는 온전히 첼로 연습할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다)를 물색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방 두 개 중에서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는 큰 방을 연습할 공간으로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새집에 짐이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보니, 아차 싶었다. 생각보다 짐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이전에 살던 집보다 집 내부의 규모가 작은 건지 방 두 칸에 짐이 들어가니 첼로 연습할 공간이 부족해진 것이다.결과적으로 투룸이지만 두 개의 방에서는 도저히 첼로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못했고, 연습은 부엌에서 해야 했다. 온전히 연습할 공간이었다면 의자와 보면대 등을 세팅해두고 편하게 연습할 수 있었을 텐데, 부엌은 자주 다니는 공간이라 어쩔 수 없이 연습할 때마다 세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짐정리가 되자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진 마음에 케이스에서 첼로를 꺼냈다. 식탁 의자에 티자를 연결하고 보면대를 세팅했다. 부엌이라서 활과 첼로를 닦는 수건, 활에 바르는 송진 등을 식탁 위에 올려둘 수 있는 점은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의 첼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라도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하지만 이사를 온 뒤 이틀째 되는 날, 집에서 연습을 하는데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혹시 누가 초인종을 누르는 건 아닌지, 문을 두드리는 건 아닌지 괜한 신경이 쓰였다. 내가 연습하는 첼로의 소리는 내가 듣지 못하지만, 저음인 첼로의 소리가 상당히 크니까 벽간이든 층간이든 이웃들에게 다 들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연습하면서 지내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날 밤 새로 이사온 집 건물의 거주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에 새로 이사를 왔는데 첼로를 연습한다고. 밤 9시를 넘어서는 연습하지 않고, 1시간을 넘길 정도로 오래 연습하지는 않을 테니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편지를 써서 집집 문틈마다 편지를 꽂아 두었다.
첼리스트 박관찬. ©천막사진관 오상민

4년 동안 거주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할 집을 고르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투룸’이었다. 짐이 많으니까 가능한 넓은 공간에 수납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방 하나는 ‘첼로 연습실’로 꾸미고 싶은 욕구가 더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전에 살던 집과 가능한 비슷한 구조(방 하나는 온전히 첼로 연습할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다)를 물색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방 두 개 중에서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는 큰 방을 연습할 공간으로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새집에 짐이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보니, 아차 싶었다. 생각보다 짐이 많은 건지, 아니면 이전에 살던 집보다 집 내부의 규모가 작은 건지 방 두 칸에 짐이 들어가니 첼로 연습할 공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룸이지만 두 개의 방에서는 도저히 첼로를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못했고, 연습은 부엌에서 해야 했다. 온전히 연습할 공간이었다면 의자와 보면대 등을 세팅해두고 편하게 연습할 수 있었을 텐데, 부엌은 자주 다니는 공간이라 어쩔 수 없이 연습할 때마다 세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짐정리가 되자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진 마음에 케이스에서 첼로를 꺼냈다. 식탁 의자에 티자를 연결하고 보면대를 세팅했다. 부엌이라서 활과 첼로를 닦는 수건, 활에 바르는 송진 등을 식탁 위에 올려둘 수 있는 점은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의 첼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라도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이사를 온 뒤 이틀째 되는 날, 집에서 연습을 하는데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혹시 누가 초인종을 누르는 건 아닌지, 문을 두드리는 건 아닌지 괜한 신경이 쓰였다. 내가 연습하는 첼로의 소리는 내가 듣지 못하지만, 저음인 첼로의 소리가 상당히 크니까 벽간이든 층간이든 이웃들에게 다 들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연습하면서 지내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날 밤 새로 이사온 집 건물의 거주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에 새로 이사를 왔는데 첼로를 연습한다고. 밤 9시를 넘어서는 연습하지 않고, 1시간을 넘길 정도로 오래 연습하지는 않을 테니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편지를 써서 집집 문틈마다 편지를 꽂아 두었다.

첼로 연주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쓴 편지들. ©박관찬
첼로 연주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쓴 편지들. ©박관찬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한 이웃으로부터 내가 편지 말미에 적어두었던 내 휴대폰 번호로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그것도 새벽 3시에 와 있었다. 깜짝 놀랐는데, 우리집 아랫층에 사는 이웃인데 누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 부동산에 연락해서 배관 검사를 하고 했지만, 어디에서 누수가 발생한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튼 덕분에 이웃과 첫 연락이 닿았다.

이사 온 집이 생각보다 공간이 협소해서 첼로 연습을 부엌에서 해야 하는 건 아쉽지만, 장점도 한 가지 발견했다. 바로 옥상의 존재다. 3층 건물의 3층에 살게 되었는데, 옥상 공간이 상당히 괜찮았다. 지금은 아직 겨울이라 날씨가 차갑지만, 따뜻한 봄이 되면 옥상에서도 연습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첼로를 배우고 싶게 만들었던 인생영화 ‘굿바이’의 남자 주인공 ‘다이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실외의 어느 공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첼로 연습을 해보는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이사를 온 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날씨가 따뜻하면 이곳에서 연습을 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첼로를 연주하면서 내게 가장 큰 로망은 따로 있다. 어쩌면 어려운 미션일지도 모르는데, ‘밤하늘 아래에서 연주하는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은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춰준다. 저시력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게 그런 달의 존재는 참 감사하다. 어느 날 밤, 길을 잃었을 때 달이 떠 있는 위치를 통해 길을 찾은 적도 있다. 달이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것뿐만 아니라 길을 찾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난 그런 달의 곁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다. 어두운 밤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반짝여 주는 별. 하지만 내 눈으로 달은 보여도 별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영화 속에서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난 가끔 별의 존재가 내 첼로 연주와 닮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 눈으로는 잘 안 보일 정도로 가늘게, 약하게 반짝이기도 하고 때로는 환하게 비추기도 하는 별이,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연주하는 소리를 직접 못 듣는 내 연주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음과 영혼으로, 그리고 진동에 의존해서만 연주하는 내 첼로 소리도 별처럼 때로는 가늘게 떨리기도 하고, 때로는 환하면서 풍부한 진동을 내기도 하니까.

그래서 새로 이사온 이 집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달을 위한 별의 연주’를.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도 단 한 명뿐일지도 모르는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로 첼로를 연주하는 이야기, 그리고 달 곁에서 반짝이는 별의 존재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소소하면서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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