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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상장애인 못 타는 장콜 안전기준은 위헌” 헌재 결정이 아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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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늘 댓글 0건 조회 196회 작성일 23-07-0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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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휠체어 기준으로 만들어진 장콜 안전기준
침대형 휠체어 쓰는 장애인, 장콜 탑승 못 해
‘평등권 침해’ 헌법불합치 결정 내려졌지만
와상장애인 탑승가능한 장콜 도입 여부는 미지수 
‘이동권 침해’ 주장도 판단 거부


지난 5월, 헌법재판소는 침대형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에 탑승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만들지 않은 것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제6조 제3항 별표 1의 2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하는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안전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2019헌마1234). 이 조항이 ‘표준휠체어만’ 기준으로 해서 표준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장애인은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판 대상 조항이 표준휠체어만을 기준으로 특별교통수단에 장착해야 할 휠체어 고정설비의 안전기준을 정하여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과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장애인콜택시에 승차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장애인콜택시에 승차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인권사건에서 소극적이었던 헌재, 이례적인 헌법불합치 결정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있어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침대형 휠체어를 이용하는 와상장애인(누워 지내는 장애인)은 표준휠체어만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교통약자법상 안전기준으로 인해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친지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은 물론 필수적인 의료적 진단과 처치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갈 때도 많은 비용이 드는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만 했다고 한다. 심지어 결정문에 따르면 서울특별시는 2020년 4월경 침대형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특수형 구조차량을 운행한 적이 있었으나, 안전기준의 부재로 문제가 제기되자 운행을 중단했다고 한다. 이처럼 와상장애인은 표준휠체어만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특별교통수단 안전기준으로 인해 이동권에 중대한 제약을 받아온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그간 장애 인권 사건에서 대부분 각하 또는 기각 결정을 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재판관 전원일치로 이루어진 이번 헌법불합치결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장애인 이동권이 쟁점이 되었던 ‘저상버스 도입의무 불이행 위헌확인 사건(2002헌마52)’을 각하하였을 뿐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장애 인권과 관련된 사건에서 위헌취지의 결정을 내린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통해 표준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도입을 계획하고 있음에도 안전기준 제정의 시급성을 이유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 새로운 장콜 도입 여부는 미지수, ‘이동권 침해’ 주장도 판단 거부

그러나 결정문을 읽어보면 헌법재판소가 이번 결정에 이어 앞으로도 전향적인 결정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대목들이 존재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동권이 침해되었다’는 청구인의 주장에 대하여 판단을 거부하였다. 또한 평등권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비교 대상을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과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설정하였다. 무엇보다 “특별교통수단 제도는 수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국가의 재정 부담 능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라며 ‘국가 재정’을 우려하는 설시를 반복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수혜적 성격의 제도 형성은 입법부 또는 행정부가 국가 재정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문제이므로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이번 결정에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누워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고정설비 안전기준 등을 별도로 규정한다고 하여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심해진다고 볼 수도 없다”며 국가 재정 문제를 우회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새로운 안전기준을 제정한 이후 특별교통수단을 실제 도입할지 여부는 여전히 국가 재정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재량의 영역으로 남겨둔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과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을 비교집단으로 설정한 것 또한 소극적 태도의 연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수혜적 법령에 대하여 자신을 수혜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부진정입법부작위(법령을 제정하기는 하였으나 그 내용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다는 것으로, 법령 자체를 제정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하는 ‘진정입법부작위’와 구별된다)’를 다툰 헌법소원에서 이러한 비교집단 설정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만약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이 탑승 가능한 특별교통수단이 도입되어 있지 않았다면, 와상장애인의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교통수단이 없는 것에 대한 위헌성은 다툴 수 없는 것일까?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다양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지역사회에서 이동권을 행사하고 있는 비장애인과의 차별 여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가장 아쉬운 지점은 헌법재판소가 이동권이 침해되었다는 청구인의 주장에 대하여 판단을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그 취지는 심판 대상 조항이 표준휠체어만을 기준으로 고정설비의 안전기준을 정하고 있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헌법재판소는 설령 차별로 인해 주되게 침해된 권리가 평등권이라 할지라도 심판 대상 조항이 와상장애인의 이동권에 미친 중대한 영향을 고려하여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동권과 평등권 침해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별도의 설시 없이 평등권 침해 여부를 심사하며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하였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앞으로도 이동권 사건 또는 유사한 사건에서 이번 사건과 같이 이미 시행 중인 제도가 존재하나 일부 집단이 소외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그중에서도 국가 재정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에만 소극적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해 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남긴다.

한편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은 여전히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기사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2024년까지 시행규칙을 개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설령 시행규칙이 개정되어 새로운 안전기준이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표준휠체어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을 어느 정도 도입하고, 운영할 것인지(심지어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재량의 영역으로 남아있게 된다. 물론 입법부와 행정부 스스로 기본권 보장의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는 여전히 기계적인 권력분립과 국가 재정을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인가? 이번 결정은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도록, 헌법재판소가 전향적인 결정을 이어 나가길 기대한다.

헌법재판소의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사건(2019헌마1234)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한다.

한상원

한상원.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장애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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